
죽마고우 ( Essay 31st of 2026 )
기억할 수도 없는 온갖 개꿈을 꾸고 허리가 아플 만큼 잤는데도, 눈이 저절로 떠져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이다. 더 잘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옛날처럼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고,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던 그때가 정말 그립다. 꿈속에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던 때는 행복하기도 했다. 화장실에 갔다 와서 다시 잠자려고 애쓰다가 벌떡 일어나서 원고지를 꺼냈다.
어제는 두 달여 만에 죽마고우들을 다시 만났다. 고향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의 소모임이다. 잘 나고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던 친구들이다. 오늘도 내가 퇴근 후에 낯익은 노원으로 갔다. 7호선 노원역에 내려서 9번 출구를 찾아가는 일은 멀고도 힘들었다. 하늘 가는 길처럼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씩 타고서 올랐다. 그리고 시간을 잘 계산하지 못해 약속된 시간보다 25분 전에 도착했다. 나는 메신저 단체방에 ‘빨리들 오라’는 글을 올리고, 우리가 식사 후에 자주 가던 커피점 앞, 하얀 의자에 앉아 비 내리는 노원의 초저녁 분위기를 잠시 즐기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조용하다. 어느 때는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던 커피점 안에도 텅텅 비어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오늘 만나는 동창 친구이고, 항렬이 높은 집안 아저씨이다. "일찍 왔다면서 왜 안 와?"냐는 것이다. 친구는 약속 장소인 노원역 근처인 편편집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정하고 앉아 나무 시렁에 차돌과 숙주나물과 채소를 찌고 있었다. 자주 앉았던 그 자리이다.
오늘은 5월 초에 생일이었던 친구의 초대가 일정이 잘 맞지 않아서, 이제야 네 명이 조촐하게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우리 넷이 모이면 식탁 위에는 달랑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이 전부이다.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나도 오늘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회사에 들러서 차를 가지고 갈 계획이었다. 그래도 생일 축하 자리이니, 한 잔을 받아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들었다 놓았다 했다.
무한 리필인 샤브샤브 식당인 편편집은 내가 좋아하는 채소와 소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월남쌈에 온갖 채소를 싸서 칠리소스에 찍어 먹으면 매콤하고 참 맛나다. 그리고 맵고 순한 두 국물에 넣고 살짝 익혀서 먹는 우삼겹과 차돌이 약간 질기긴 해도 씹을수록 고소하다. 요리 솜씨가 좋은 친구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줘서 정말 많이 먹었다. 반백 년도 넘게 지내 온 친구들은 언제 보아도 반갑다. 두메산골에서 어렵게 컸던 우리인데, 자식 농사는 다 잘 지었다. 박사도 두 명으로 서울대 의학박사가 있고, 국립대 교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 아이비 출신이고 지금도 미국에 사는 자녀도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에 다니고 가장 안정적인 공무원인 자녀도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라며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다들 열심히 노력하고 이룬 성과들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겨서 커피 한 잔씩 마시며 담소를 이어간다. 주름이 하나 없던 친구의 얼굴에도 잔주름이 생기고, 피곤한지 코밑도 헐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이제 우리도 나이에 깊이 파묻혔다. 다 다른 환경이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다행스럽게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게 있다. 그것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한화이글스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모두가 프로야구 전문가이다. 3대3 동점에서 밀어내기 한 점을 내는 것까지 보고, 커피점을 나와 헤어졌다. 아마도 7월에나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다시 젊어질 수는 없어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수술한 무릎이 아직도 다 회복이 안 되어 다리를 약간 절며 걷는 친구가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2026년 5월 28일 꼭두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