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국과 육개장 ( Essay 27th of 2026 )
일요일 오전 우리 집 부엌의 인덕션에는, 작지 않은 국 솥이 팔팔 끓고 있다. 아내는 아침부터 바쁘고 부산했다. 부엌조리대에는 마른 고사리가 물속에서 불려지고, 대파는 큼직큼직하게 잘려 쭉쭉 찢어져 있다. 그리고 무도 조각조각 예쁘게 썰었고, 멀리서 올라온 문경 한우도 먹기 좋게 썰어 놓았다. 이 재료들이 갖은양념과 함께 한 솥에 넣어진 채로 섞여서 끓여지며, 맛난 냄새가 난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이고 있다. 정작 본인은 매워서 속이 아프다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육개장이다.
우스갯소리로 나이 든 부인이 들통에 곰국을 끓이면, 아주 긴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자기가 여행하는 동안, 홀로 남은 남편이 두고두고 먹으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밖에서 사 먹으라며 그것마저 끓여 놓지 않는다고도 한다.
처음은 아니지만, 아내에게도 그 황혼의 여행이 시작된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들통의 곰국 대신에 작은 국 솥의 육개장이다.
얼마 전에 아내는 동네 언니, 동생들과 3박 4일간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내일이 바로 그날이다. 제주도에는 적지 않게 갔다. 가족여행을 갔었고,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 위해서도 여러 번을 갔다. 얼마 전에는 멋진 바다 경치를 바라보고 창가에 앉아, 고급스럽고 맛난 커피를 즐기시는 아내의 우리 동네 큰 언니와 몇이 갔었다. 이번에도 그 언니하고 모두 여섯 명이 여행을 간단다. 그래서 3박 4일 동안 먹으라고 육개장을 끓이는 것이다. 나는 여느 때 같으면 아주 좋아하는 맛있는 육개장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조금은 심드렁해 있었다.
아내는 열무김치도 담갔다. 내가 그동안 매일 퇴근해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해도 세 끼니인데, 육개장을 넉넉하게 끓이고, 밑반찬도 준비했다. 저녁은 사 먹으라며 육개장은 준비하지 않아도 됐었다. 그래도 고맙다.
나는 심령이 약한 건지 아니면 철이 덜 들고 겁이 많은 것인지, 자다가 가위눌림을 자주 당한다. 소파에서 자다가 목 눌린 내 외침에 아내가 방에서 뛰어나와 깨워준 적도 있다. 그런데 텅 빈 집에서 나 혼자 자다가 가위눌림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까 조금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도 공황장애의 후유증이다.
어쩌면 밤새 텔레비전을 켜 놓고 잘 것만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아주 오래전에 아내가 장모님께 김장해 드리려고 시골 친정에 가면, 나는 퇴근 후에 할 일이 없어서 평소보다 더 일찍 집에 왔었다. 조금은 마음 편하게 저녁 먹고 들어갈 수 있는데, 운명처럼 약속이 잡히지 않아 일찍 귀가했었다. 이번 주에도 목요일에 새벽 운동이 잡혀서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일찍 들어와야 한다. 3일 동안 뭘 하지? 그래도 끓여 놓은 육개장을 다 먹어야지 않을까?
아예 오늘 저녁에 큰 언니의 영순 형님, 순덕 씨의 원구 씨와 경숙 씨의 유미 아빠, 그리고 경의선 숲길공원에서 스쳐 지나며 한 번 보았던 수현 아빠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분 등 여섯 남자가 만나서 월요 미식회라도 가져야 할까? 하여튼 그분들이 3박 4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고 여행 잘 다녀오셔라. 당신이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엄마이며, 누구의 할머니인지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여행하고, 행복한 추억 잘 만들어 오셔라. 하지만, 들통에 곰국 끓이는 일은 자주 없었으면 좋겠다.
2026년 5월 17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