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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과 동거 그리고 이별

파인트리(story08655) 2026. 5. 8. 16:56

 

 

뱃살과 동거 그리고 이별( Essay 26th of 2026)

 

나는 지금보다 젊었을 때, 살찌는 게 소원인 적이 있다. 살찌려고 일부러 늦은 밤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내 키는 우리 나이대 표준 정도인 172.4cm이다. 몸무게는 63kg20년 가까이 크게 변동 없이 유지했었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때가 가장 몽실몽실하게 살이 쪘었던 것 같다. 작은 얼굴에 깡마른 체격이라 더 허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꾸준히 노력해도 살은 찌지 않아서,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체념했었다. 그런데 15년 전에 내가 담배를 완전하게 끊은 2010년부터 갑자기 체중이 늘기 시작했다. 나잇살과 금연 후 주전부리가 심해지더니, 먹는 모든 것들이 맛나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하루에 세 끼니를 왜 먹어야 하냐고 투덜대기도 했다. 우주 식량처럼 캡슐 한 알을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먹는 시간이 번거롭고 아까웠다.

하지만, 먹는 기쁨이 생기고 조금씩 늘어나는 주량이 겹치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70kg이 되니, 키에 적당하게 잘 어울렸다. 마침, 그즈음에 시작한 등산은 내 하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줬다. 근육으로 다져진 허벅지와 장딴지는, 우스갯소리로 바늘로 찌르면 바늘이 휘어진다고 할 만큼 튼실했다. 꼿꼿한 허리와 상체보다 긴 단련된 하체가 보기 좋았다. 그리고 나이 보다 몇 살은 어리게 보였던 그때가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을 것 같다.

 

올해 지난 어린이날에 남양주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다가, 아내는 서울역 아웃렛 로가디스에 가서 여름 양복 한 벌을 사줬다. 매번 옅은 남색계열의 옷만 입는다고 다른 톤의 옷을 샀다. 그런데 옷을 고르면서 불룩 나온 뱃살 때문에, 바지 둘레를 8688중에서 고민하게 했다. 86을 입으면 보기 좋은데 배 때문에 입기 힘들고, 88은 허리는 넉넉하게 맞는데 다리 등 다른 곳이 헐렁해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복부비만과 과체중 얘기로 옮겨 갔다. “뱃살을 빼야 하는데, 문제의식도 없다라고 자꾸 무안하게 했다. “술을 자주 마시고 예전보다 운동도 안 하니 살이 빠지겠냐?”라고 열도 냈다. 어휴 이 지겨운 살붙이 뱃살 때문에 망신이다.

70kg이던 체중이, 점점 늘어나서 80kg까지 나간 적이 아주 잠시 있었다. 그런데 내 몸무게 때문에 내가 발걸음을 옮기는 게 힘들었다. 그 뒤 등산하고, 사이클도 열심히 타며 운동해서 살을 조금 뺐고, 지금은 76kg이다. 작은 얼굴도 살이 쪄서 많이 커졌다. 샤프하다던 내 이미지도 이제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가 되었다. 내가 살 빼는 문제로 고민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살 빼는 일은 사치스러운 남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내가 살을 빼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먹는 것을 줄여야 하는데, 먹는 게 맛있으니 멈출 수가 없다. 아내도 살찐다고 잔소리도 하지만,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고, 확 줄이지 못하고 한 공기 채워서 준다. 맛나게 먹고 운동해서 빼라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양복 입으면 배가 나와 보이지 않는 착시가 좀 있다. 너무 오래 입어 온 양복에 대한 적응력일지 모른다. 대신 몸에 달라붙는 얇은 등산복을 입었을 때, 도드라지게 보인다. 명성산에서 둥그렇게 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등산복에 불룩 나온 내 배를 보고 놀라던 회원님의 외침이 지금도 선하다. 그리고 나보다 심한 사람-배를 내밀고 뒷짐 지고 교장 선생님처럼 걷는 사람이나, 아랫배가 쳐져서 벨트 아래에 있는- 들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기 만족감이 살 빼는 노력을 무디게 한다.

 

나는 그동안 내 뱃살과 밀회를 즐겼다. 애증의 관계이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과감하게 손을 놓으려고 한다. 올해 안으로 70kg까지 체중을 줄여서 고도비만이니, 과체중이거나 복부비만이라는 얘기와 영원히 작별하려고 한다. 일단은 먹는 것도 좀 줄여야겠지만- 사실 나는 소식가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늘려나가려고 한다. 쭈글쭈글해진 얼굴과 근육의 탄력도 줄어서, 체중이 70kg으로 줄어도 그때 멋졌을 적과 비교할 수는 없어도 꼭 돌아가려고 한다. 대신 뱃살이 없어져서 이전 바지들이 훌렁훌렁 내려가서 벗겨지면, 비싼 양복들 꼭 다시 사주셔라.

가자~ 70kg을 향하여 중단 없는 전진이다.

 

202657일 출근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