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짜증을 냈을까? (Essay 24th of 2026)
나는 오늘, 말도 안 되는 일로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렸다. 어쩌면 고수님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만에 고수님과 저녁을 먹고, 당구 시합을 했다. 당구 게임비는 지는 사람이 내기로 했다. 고수님은 아주 오래전의 지난번 시합보다 세 개가 더 많은 열세 개이고, 나는 그때 그대로 다섯 개이다. 나한테 말도 안 되는 행운의 샷 두 개가 오지 않는 한, 내가 이기기 어려운 시합이다. 그 고수님의 실력을 이미 잘 알기 때문이다. 고수님은 수준이 150이라는데, 실력은 그보다 훨씬 높고 뛰어나다. 큐를 고정하는 왼손에 장갑도 안 끼고 치는 고수이다. 공의 강도나 휘어지는 회전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확연히 다른 고수님이다. 언제나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초보자인 나도 그걸 알 수가 있다. 오늘도 시작한 지 40분도 안 되어 결국은 13대 1로 졌다. 너무 일방적인 패배이다. 그래도 나는 1개는 쳤다면서 스스로 나를 위로했다. 눈짐작으로 대략 치는 나의 샷이, 오늘따라 아주 조금씩 더 벗어나서 한 개 밖에 못 쳤다. 하지만, 그것이 내 실력이다. 그런데 내가 진 후 게임비를 먼저 계산하지 않고 손부터 씻는 사이에, 그 고수님이 게임비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건 약속 위반이고 반칙이다. 처음부터 내기했으니, 진 사람이 게임비를 내는 게 맞다. 고수님의 호의지만 사전의 약속을 깼다고, 나는 투정하고 짜증을 낸 것이다. 볼멘소리로 "이제 다시는 당구를 안 친다."라고 했다. 내게 엄청 까칠하게 군다고 얘기하던 고수님은, 내 뜻이 너무 강하자 결국 계산한 게임비를 취소했고, 내가 다시 게임비를 지급했다.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느냐고 책망할 수는 있어도, 진 사람이 내기로 한 것이라서 그렇게 했다.
고수님은 오늘 저녁을 내가 샀다고 시합에 이겼는데도 게임비를 대신 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상황이었어도 나는 진 사람 대신 게임비를 계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기했으니 서로 이기려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다. 고수님은 "그래 잘 났다. 네가 나랑 다시 안 하는 게 아니고, 다시는 내가 너랑 안 칠 거다"라고 할 것만 같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같은 상황이 열 번이나 다시 생겨도, 오늘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진 사람 대신 게임비를 내겠다는 고수님의 좋은 마음은 있는 그대로 따뜻하고 고맙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역인 나로서 아주 작은 것이지만, 고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고 멋지고 예쁘게 포장해서 이해해 주면 좋겠다. 오래전에 한 약속이지만, 수요일에 내 일정이 새로 생겨서 미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사정으로 우리의 신뢰를 조금이라도 깨고 싶지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때로는 목소리 높여 논쟁하고 다투어도 좋은 인연이고 좋은 분이다. 내가 오늘 당구 시합하며 생긴 우스운 이 얘기를 소재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늦은 밤에 감정이 다소 무디어진 상태로 차분하게 적어가고 있다.
고수님이 부족했던 오늘 일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어서 어른이 된 게 아니고, 더 고집 세지고 투정만 배로 늘어난 일곱 살 어린애가 된 것 같다. 나는 일곱 살이다.
2026년 4월 27일 밤에